이석구 육군 중장(육사 41기)과 장경욱 전 육군 소장(육군 36기). 육사 5년 선후배인 두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군 정보기관 수장 자리인 국군기무사령관직에서 이임식조차 갖지 못하고 쫓겨나듯 내몰려진 부분이다. 두 사람이 직속 상관인 국방장관한테 비난받은 것도 유사하다.
2013년 10월 장군 인사 발표날 기무사 직원들은 장경욱 사령관이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할 것으로 예상하고 축하 꽃다발과 함께 다과회까지 준비했다가 기무사령관이 경질됐다는 황망한 소식을 접했다. 기무사령관이 이임식도 갖지 못하고 교체된 경우는 1993년 3월 서완수 기무사령관이 회의 중 전화로 교체를 통보받는 형태로 잘린 이후 처음이었다. 장 사령관은 후임 보직조차 받지 못하고 군복을 벗었다.
약 4년 10개월 후인 지난 3일 기무사 직원들은 이석구 사령관이 전격 교체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바로 다음날에는 신임 기무사령관 취임식이 열렸고, 남영신 신임사령관(학군 23기)이 송영무 국방장관과 함께 기무사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취임식장에 들어섰다.
장경욱 전 소장은 자신이 정권으로부터 ‘토사구팽’을 당했다고 여겼다. 이것이 그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선언에 참여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육군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에 임명돼 순순히 대구로 내려가는 이 전 사령관의 경우는 정권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았을 수 있다.
아무튼 두 사람이 경질된 결정적 이유는 청와대와 국방장관에 ‘지휘 부담’을 준 탓이었다. 두 사람 모두 국방장관과 맞서는 모양새였다. 그런 가운데 청와대가 기무사령관 손을 들어주게 되면 국방장관을 경질하고 후임 장관 청문회를 준비해야 할 판이었다. 그러기에는 정권 입장에서는 부담이 너무 컸다. 설사 국방장관을 자르려고 한다 하더라도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군 조직에서 부하인 기무사령관을 놔두고 상관인 국방장관부터 먼저 날리기는 어렵다.
두 사람의 차이점은 있다. 장 전 기무사령관은 중장과 대장급 인사를 앞두고 청와대에 김관진 국방장관의 인사 전횡 문제를 군내 여론동향으로 은밀하게 보고한 것이 화근이었다. 반면 이 전 기무사령관은 최근 국회국방위에서 공개적으로 송영무 국방장관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등 ‘하극상’을 연출한 탓이었다. 특히 이 전 사령관으로서는 청와대 의중을 충실히 받들었다고 여겼을 지 모르나, 표현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다.
은밀하게든, 공개적이든 두 사람은 모두 정권이 자신들의 충정을 믿고 지지할 것으로 착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는 두 사람 모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 됐다. 정권 차원에서 기무사령관으로 임명한 만큼 무한신뢰를 보낼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정권 입장에서는 대체재가 없었던 게 아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후임 이재수 사령관에게는 ‘예정된 기무사령관’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이번에 취임한 남영신 사령관의 경우에도 지난해 9월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 전격 발탁됐을 당시부터 문재인 정부 군부의 새로운 실세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바 있다. 부산 동아대 학군(ROTC) 출신인 그는 비육사 출신 첫 특전사령관이었다. 그동안 특전사령관과 기무사령관은 육사 출신이 독점하다시피 한 관례에 비춰 보면 정권 차원에서 그에게 거는 기대를 짐작할 수 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남 신임 사령관에 대해 “특수전 및 야전 작전 전문가로, 폭넓은 식견과 전문성, 조직관리 능력을 갖췄다”며 “솔선수범하고 합리적 성품으로 상하 모두에게 신망을 받는 장군이며, 기무사 개혁을 주도하고 추진할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이석구 전 사령관도 경질돼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으로 밀려나기 전까지는 새로 출범한 정권의 기대주였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기무사령관 자리를 놓고 합동참모본부 작전기획부장인 이석구 소장과 제1야전군 참모장인 최영철 소장(육사 41기·현 육군교육사령관)을 저울질하다 지난해 9월 이석구 장군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이 장군이 노무현 정부 당시 영관급 장교로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으로 파견 근무했던 인연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무사는 ‘통수 보좌’ 임무를 강조한다. 대통령의 군 통수권 행사를 위한 ‘눈’과 ‘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칫 기무사령관이 직속상관인 국방부 장관 보다 청와대와 지근 거리에 있다는 착각을 하게 하는 부작용도 낳는다.
그러다 보면 기무사령관이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청와대에 직언하다 괘씸죄에 걸리거나, 거꾸로 청와대 의중을 믿고 국방장관을 압박하다 ‘역풍’을 맞는 사례도 있다. 장경욱 전 사령관은 지난 정권에서 국방장관의 독단을 견제하는 것은 기무사의 고유 임무이기 때문에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했지만, 돌아온 결과는 경질이었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통령 독대를 위해 기무사령관이 국방장관 주변 정보를 수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만약 국방장관이 독단과 전횡을 한다고 신임 기무사령관이 청와대에 보고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침 국방부 기무사 개혁위원회는 ‘국방장관 비리에 대해서는 기무사령관이 군 통수권 보좌 차원에서 예외적으로 청와대에 직보할 수 있다’고 발표한 터이다.
독단과 전횡이 비리 범주에 포함되는 지는 모르겠다. 어찌됐든 정답은 ‘(청와대 반응이) 그때그때 달라요’가 아닐까 싶다. 기무사령관 입장과 정권의 입장이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변치 않는 결론은 있다. ‘군인은 명령이 나면 움직이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