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꽂아주세요. 결제됐습니다.” 약 5초면 끝이다. 신용카드의 빠른 처리 속도는 신속한 결제를 가능케 했다. 비자카드의 경우 초당 2만4000건의 거래를 처리한다고 알려져 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거래가 동시에 진행돼도, 결제를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는 이유다. 그럼 초당 100만 건의 거래를 처리하는 기술이 있다면 어떨까.
“우리 블록체인 프로토콜(통신규칙)은 가능합니다.” 블록체인 개발 스타트업 ‘위즈블’ 유오수 대표의 말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사실이라면 눈을 깜빡이기도 전에 금융거래가 이뤄진다는 뜻이다.
블록체인에 ‘脫중앙화’ 도입, 분산 처리 시도
온라인상의 모든 활동은 일정 속도 이상의 정보처리 능력을 요구한다. 페이스북에서 단지 ‘좋아요’를 누르는 데만 5만 건이 넘는 정보의 거래가 발생한다. 그런데 대다수 블록체인의 정보처리 속도는 이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블록체인을 바탕으로 발행된 가상화폐가 가치교환 수단으로 자리 잡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트코인의 토대가 되는 블록체인의 초당 처리 거래 건수는 고작 7건, 이더리움은 20건에 불과하다. 비교적 빠르다는 리플도 1500건에 그친다.
이런 상황에서 유 대표의 말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 위즈블의 기술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강호동과 이윤석이 벽돌을 100만 개 옮겨야 한다. 당연히 강호동이 나르는 속도가 더 빠르다. 하지만 혼자 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반면 이윤석은 작업을 할 다른 사람들을 아주 많이 모았다. 덕분에 더 빨리 벽돌을 나를 수 있었다.”
위즈블의 기술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블록체인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래를 중앙 서버가 처리하지 않는다. 대신 그 역할을 거래에 참여하는 개개인의 서버에 맡긴다. 여기서 각각의 서버를 ‘노드(Node)’라고 한다. 이들 노드는 거래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검증하게 된다. 나중에 위즈블이 상당히 많은 노드를 모으게 되면, 속도는 그만큼 빨라지게 된다.
물론 비트코인 등을 발행하는 블록체인도 노드가 검증 역할을 한다. 단 이때는 소수의 ‘마스터노드(Master Node)’가 검증 과정을 제어한다. 이윤석이 다른 일꾼들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반면 위즈블은 마스터노드의 역할조차 각 노드들에게 맡길 계획이다. 가상화폐의 핵심 특징인 ‘탈중앙화’를 그 기반 기술에도 적용한 셈이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블록체인 기술 수준은 미국보다 2.4년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과 중국, 일본과 비교했을 때도 밀린다. 게다가 일본 미쓰비시UFJ 금융그룹은 올 5월21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당 100만 건 이상의 처리능력을 가진 블록체인을 개발 중”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을 갖춘 블록체인의 구현 과정을 위즈블은 이미 테스트넷(기술 구현을 시험하는 환경)에서 공개한 상태다.
‘기술 융합’으로 日 금융재벌도 못한 성과 거둬
테스트넷에서 기술력을 검증한 업체는 메인넷을 내놓게 된다. 이는 블록체인이 자체의 고유한 생태계에서 가동된다는 걸 뜻한다. 메인넷이 나오면 이를 기반으로 게임·쇼핑·SNS 등 다양한 앱을 개발할 수 있다. 유 대표는 오는 8월말 메인넷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2013년부터 블록체인 설계를 해 왔고 올 초에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면서 “메인넷은 완공된 건물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어 유 대표는 연구 성과의 배경으로 ‘기술 융합’을 꼽았다. “블록체인만 잘한다고 더 나은 블록체인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블록체인과 금융, 네트워크 등 세 가지 분야가 융합돼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우리는 각 분야의 개발자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지식을 공유했다.”
유럽의회 의원이자 포커 챔피언인 안타나스 구오가는 “블록체인은 4차 산업혁명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판을 뒤흔들어 시장의 흐름을 통째로 바꿀 것이란 주장이다. 우리 정부도 블록체인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 적용 분야는 사실상 모든 산업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자동차도 그중 하나다. 자율주행차가 대중화되면 사람들은 운전에 신경 쓰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동차를 해킹해서 핸들을 절벽 쪽으로 꺾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블록체인은 이를 막아줄 수 있다. 강력한 보안 기능으로 해킹 경로를 원천 차단하기 때문이다. 유 대표는 “기존의 블록체인은 결제량과 속도의 한계로 적용 분야가 제한적이었다”며 “앞으로 우리 기술을 활용하면 적용 분야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위즈블을 바라보는 일부 대중의 시선은 곱지 않다. ‘스캠(scam·사기)’이란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기 때문. 그도 그럴 것이, 자금 조달을 위해 블록체인으로 발행한 가상화폐 중 “81%가 사기”란 조사 결과도 있다. 이들은 독자 기술력을 갖추지 않고 장밋빛 미래만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이 점은 유 대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국내 홍보를 자제해 왔다”고 그는 말했다. 이어 “한국 기업이 블록체인 업계에서 거둔 성과에 대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의구심을 갖고 있는 걸 안다”며 “하지만 메인넷이 공개되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언론과 전문가들의 검증을 얼마든지 받을 의향이 있다. 우리 블록체인이 전 세계 공통 기술표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는 또 다른 고용시장을 낳을 수도 있다. 나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5차 산업혁명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우리가 주역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공성윤기자
출처 : 시사저널
소식 감사합니다,^^